가수 싸이의 흠뻑쇼가 올해는 다른 의미로 이슈였다. 7월에 개최되는 흠뻑쇼는 1회 공연에 300톤의 식수를 뿌리며 진행하는 콘서트로 유명하다. 6월 초까지는 강수량이 많지 않았던 터라 농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가뭄이 큰 걱정거리였나 보다. 이엘 이라는 배우가 자신의 SNS에 싸이 흠뻑쇼에 사용되는 300톤의 식수를 두고 소양강에 뿌려면 좋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자신의 영향력을 고려치 않고 타인의 직업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발언을 내뱉은 행위도 문제이나, 저 발언의 이면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들은 선한 의도를 가진 발언은 일단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궤변을 언제나 발화의 기저로 삼는다. 물론 그 선한 의도는 내 편이 보기에 선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 발언의 의도가 선하기만 한다면, 주장에 대한 근거가 틀렸더라도,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 발언이 실제로 이루어질 경우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고 본다. 그러니 일단 던지고 보는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알 바가 아니다.
특히 그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거나, 산술통계적인 오류를 지적하거나, 혹은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한 측이 본인들과 대립한다는 생각이 들면 호전적 자세를 취하며 공격을 일삼는데, 이때 그들의 공격무기는 바로 도덕성이다. 우리는 선한 의도를 가졌고 너희는 도덕적으로 열등하니 무조건 도덕적 당위를 보유한 우리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공동체에 산적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나가며 살아가야 하는데 너희 같은 사람들이 가진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니 뛰어난 식견을 가진 우리가 계몽시키겠다는 의미다.
그들이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는 심리의 이면까지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방식의 우월감이 실질적으로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든다. 선한 의도만으로는 삶을 바꿀 수 없고 심지어 그 방향이 틀렸다면 도리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보고된 과학지식이나 통계자료도 찾아보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 마저도 거부하며 정해놓은 당위만을 좇는 삶은 마치 맹목적으로 주변을 따라하는 레밍을 떠올리게 한다. 레밍 떼의 결말은 집단자살이다.
수입산 소고기를 먹으면 무조건 광우병이 걸린다며 촛불시위를 벌이던 시대가 2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반미(反美)를 도덕의 당위로 삼고 반대할 명분을 찾다보니, 허무맹랑한 주장을 과학적 근거가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의제로 삼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소위 '진보진영'에 속해있는 사람들 중에 당시의 일을 제대로 사과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싸웠으니 괜찮다는 얘기다. 싸이 흠뻑쇼에 쓰이는 300톤의 식수를 소양강에 뿌리면 가뭄에 도움이 될 거라는 헛소리에 동조하는 행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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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는 삶의 궤적에서 나온다. 적어도 이엘이라는 사람이 이번 사건 훨씬 전부터 가뭄에 큰 관심이 있어 가뭄 예방 또는 물 절약을 실천하고 홍보를 하고 다닌 사람이었다면, 사실관계가 틀렸거나 문제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 무가치한 발언이었다 하더라도 그 의도를 존중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떠한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혀와 손가락 놀리는 행위가 타인보다 윤리적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세상에 어떤 효용 가치가 있는가.
암만 입으로 떠들어봐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일은 무익하기 이를 데 없고, 행동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무게가 실리기는커녕 허울만이 자리한다. 현실에 어떠한 실질적 도움도 되지 않지만 이웃을 생각하는 그 소중한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헛소리하는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질수록 쓸데 없는 도덕적 논쟁을 벌이느라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고 갈등은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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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은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가. 실물경제는 어떤 공동체의 도덕이나 개인 윤리관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작동하고, 삶의 패러다임은 권리운동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존재했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다. 인류의 기아는 하버에 의해 해결되었고, 근대국가의 동물보호법은 히틀러에 의해 제정되었다. 진정 공산운동으로 노동자의 삶이 진보했다고 믿는가. 인류의 삶은 고작 그런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해결책이랍시고 떠들고 다니는 주장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문제의 실질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선민의식에 기반한 도덕적 우월감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지름길이다. 진정 깨어있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린 사람이라 몰아가지 않는다. 의견이 다르다면 설득을 통해 본인들만의 도덕적 당위를 보편원리로 편입시킬 생각을 해야지, 전근대 시기의 계몽주의자처럼 굴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태도의 견지만이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로 기능할 수 있다.
광우병 진위를 떠나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안전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게 없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은 자국을 위해 수입을 중단하거나 제한하고 있는데
민영화 좋아하는 어떤 멍청한 새끼는 그냥 죄다 뚫어줬죠.
다른나라는 개병신이라서 수입을 막았을까요?
조금의 위협이라도 있다면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죠.
광우병 선동... 수준 그만 자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