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오랫동안 백수로 지내는 애 둘 있는 한부모 가정입니다.
필력이 좋지 않지만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제 이야기를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보고자 고심 끝에 글을 씁니다.
어휘력이 부족한 점 이해 부탁드려요.
28살입니다.
개정된 나이로는 26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재산은 장기렌트로 계약한 레이와 보증금 포함 6천만원정도 모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전단지, 배달, 세차, 서빙, 잡부, 콜센터 등 갖가지 일로 모았습니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급여를 받고 있고 집은 보증금의 95%를 정부지원 받아 전세로 혼자 지냅니다.
자격증은 쓸모 없는 것들만 있는데 1종 보통, 2종 소형, 지게차면허, 요양보호사, 고등학생 때 땄던 ITQ OA Master랑 민간 자격증 커피 바리스타가 전부입니다.
작년에 리그오브레전드 랭킹 50위 안에 든 게 인생 최대 업적이고 지금은 적당히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게임 대리로 생활비 정도 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과에서 8년 넘게 우울증과 게임중독, 수면장애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누워 있을 땐 자살을 생각합니다.
물론 막상 죽을 용기도 없는 병x입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 거 알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기마냥 산소 낭비하며 다시 같은 하루를 반복합니다.
19살에 전 와이프와 연애 하다 애가 생겨 혼인신고 없이 사실혼으로 가족과 살았는데 청각장애인이었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기분 따라 자주 때리고 괴롭혀서 전 와이프가 거의 매일 울었습니다.
하지 말라고 화내며 싸우면 부모님은 안들리는 사람이니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라면서 방관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전 와이프는 2년을 버티다 더이상은 같이 못 살겠다며 첫째 아이 생일날에 집을 나갔습니다.
그 날 제 세상은 무너졌고 은둔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전 와이프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저처럼 많이 불안했던 아이였는데 낯선 집에서 양육하랴 가족 상대하랴..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다고 못 해준 게 너무 많고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에 많이 괴로웠습니다.
제가 죄인이죠.
저였어도 도망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매일 하루 빨리 독립하자고 다짐 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 후 방구석에 틀어박혀 눈 뜨면 울고, 지쳐 잠들고를 식음전폐 몇 날 며칠 하니 엄마가 그러더군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무조건 돌아온다고.
그 날부터 금요예배, 주일예배,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교회로 나가 예배가 끝날 때까지 울며불며 기도했습니다.
너무 우니까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계속 물어보더군요.
그렇게 반년 했습니다.
언제쯤 돌아올까 하는 혼잣말에 간절함이 없다는 엄마의 말에 그 날부터 무교를 선언했습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교회 다니게 하려고 속인 것 같아요.
저희는 기독교 집안이라 교회를 안가거나 교회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라도 할 때면 집에서 두들겨 맞았던지라 어려서부터 교회를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정부지원을 받게 되면서 전세집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됐고, 애들은 제가 보면 큰일 난다고 돌봐준다고 해서 혼자만 나와 살아요.
종종 본가에 들러 아이들 간식과 장난감을 사주지만 멀쩡한 아빠가 아니기도 하고 유대감 없이 자란 아이들의 청소년기, 그리고 그 후의 제 위치가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학창시절은 전체적으로 불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 5학년 1학기 내내 담임에게 폭행을 당하다 2학기 시작 전에 전학을 갔습니다.
지각하면 책 몇 권씩 잡고 머리를 내리치고 4교시 수업 내내 교실 뒤에 서 있었고, 웃을 때도 맞았습니다.
하필 이 때 학교와 많이 먼 곳으로 이사 가서 한동안 자주 지각을 했고, 매일같이 맞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에 무겁고 커다란 혹이 느껴졌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스무살 군대신검 때 군무원? 군의관?.. 정신과 담당하는 그 분이 이상하다고 정신과 치료를 권유했고, 병원 가서야 이게 우울증이란 걸 인지했습니다.
다행인진 모르겠는데 군대는 공익 떴고 영장신청 했다가 3년간 연기되면서 결국 장기대기로 면제 받았습니다.
전학 간 학교엔 이전 학교에 없던 왕따가 있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던 저는 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갔고 이후로 이유없는 괴롭힘을 당했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졸업했습니다.
중학교로 올라갔더니 왕따 주동자와 같은 반이 되었고 괴롭힘은 오히려 더 심해져 협박과 금품갈취까지 자주 당했고 한동안 등교거부를 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냥 학교가 싫어서 방황한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의지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얘기 안했거든요.
5학년 때 맞고 다닌다고 얘기 했을 때도 별 말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든 출석해 학기를 마쳤지만 제 기억으론 유급 이틀 남기고 마친 걸로 기억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땐 최고의 은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고, 믿어주셨고, 이해한다고 얼굴만 비추고 가도 출석 해줄테니 오기만 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은인이신 분입니다.
가출 했을 때 위험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차라리 본인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하셔서 두 달간 숙식까지 했었습니다.
남편과 성인 자제분도 계시는 여성분이시고 아직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연락하고 지냅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어릴 땐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뭐든 잘 할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뭘 해야 될 지, 하고 싶은 일조차 없고 무엇보다 사회에 다시 나서기에 자신 없고 두렵습니다.
대문 밖에만 나가도 수중에 있는 것처럼 몸이 무겁고 숨이 턱 막혀요.
사람들 시선도 두렵고 눈이 마주치면 바지를 안입어서 쳐다본다는 강박에 바지를 만지작 거려야 비로소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보통 걸을 때 바지를 잡고 걷는데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애아빠란 사람이 제대로 된 밥벌이도 못하고 목표도 없고 마냥 집에만 쳐 박혀 있는 모습은 제 스스로가 봐도 너무 한심하고 사회에서 동 떨어진 느낌이라 자살이 답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제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산적인 목표를 잡고
작은것 부터 시작해서 자신감과 페이스를 찾는다면
무서울 게 없는 포텐셜을 터트릴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