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졸이다.
흔히들 말하는 스펙도 내세울게 없다.
자격증, 학벌, 토익 점수 그런게 없다.
그래도 부족해도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남들 다 하는거 조금 포기 하고 안하면 되는거니까.
애초에 욕심이라는게 크게 없달까. 소탈했다.
어린나이에 빨리 철들었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노동이라는게 뭔지 가끔씩 농사일을 도우며 배웠다.
열심히 하면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주는게 노동이구나.
힘든만큼 얻는게 노동이구나 했다.
노동이란걸 다 깨달은 줄 알았을때.
고등학생 1학년 무렵 막노동을 나갔다.
말로만 듣던 진짜 막노동. 공사판에서 처음 겪는 현실 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그게 익숙하면서도 무겁게 느껴졌다.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날까지 공장일을 하고나서 졸업을 하고 친구들은 대학에 발을 들였을때 나는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공장일로 벌아둔 돈으로 조리사자격증도 따보고 주방일도 잠깐 하다가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는 대형운전면허를 땄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주방일을 했다. 어쩌다보니 통장에는 고작 30만원 정도 있었다. 그때 받은 첫월급은 고작 100만원 남짓. 그 중에서도 반은 언제나 적금 나머지는 통신료와 내 생활비였다. 한달 생활비는 고작 십만원에서 이십만원 남짓. 부모님 집에 붙어 살았다. 흔히 말하는 캥거루족?
친구와 술한잔 하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던 때다.
이렇게 살아서 언제 여유가 생길까. 주방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던 중.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고. 가세는 더 기울어 졌다.
이때 통장에 300만원 남짓있었다. 나는 다시 공장일을 했다. 뭐라도 해야만 했으니까. 더럽던 힘들던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약품을 만지는 일을 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일을 하다가 혹은 왔다가 가는 것을 보았다. 손이 약품에 허물이 벗겨지고 얕은 화상을 입기도 하고 그 당시 시급이 오르기 전이라 수습이라 열심히 일해도 150만원 정도 벌었던거 같다. 정직원이 되고 시급이 올랐을때 열심히 근무시간과 수당을 챙겨야 280만원 정도였다.
나름 보잘것 없는 사람이지만, 착실히 성실하게 일했다.
버는 돈이 대부분은 적금하고 일과 집 밖에 모르며 살았다. 노는게 뭔지.. 잘몰랐다. 그렇게 모은 돈이 1억 가까이 되었다.
생산직이었는데, 반장까지 달고 더 진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때 그만뒀다. 20대를 받치고 번아웃이 왔다. 30대에 접어들어서 뭔가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7년을 다니고 그만둔지 3개월째. 반년은 쉬어보자. 생각중이다. 7년 동안 제대로 휴가를 가본적도 없었으니까.
1억 가까이라고 했는데 수중에 1억은 없다. 사람 사는게 뜻하지 않게 돈이 들어가는 때가 있더라.
참,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
이제 남은건 7년이라는 세월 일했던 성실함 정도.
앞으로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만 하면 된다는 마인드 정도.
30만원을 1억으로 만들었던 경험 정도.
처음은 늘 어렵다. 익숙해지면 다 똑같고.
그래도 내가 가난 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빚이 없어서 였다는 것 정도.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다. 이부분은 부모님에게도 감사하다.
그냥 넋두리 한번 해봤다. 일만 하다가 쉬니까. 불안하다. 노는 법도 모르겠고. 앞으로 또 뭘해야하나 고민 중이다. 좋아하던 글쓰기를 해보는 중이다. 못해보던 걸 하나씩 해보는게 나름 재미있더라.
그냥 하고 싶은 말은 잘 살자고. 포기하지 말고. 이건 해주고 싶은 말이면서도 나에게 하는 말이다.
성실히만 살아도, 반은 가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