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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펌 (번역: Ravens님)

2015년 Bleacher Report의 Jared Zwerling의 스토리입니다.

 

조던다큐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라 흥미롭네요.

  

 

 

 

마이클 조던이 농구와 스포츠 브랜딩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일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가운데, 여기 한가지를 추가하고자 한다. 그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언론 보도자료를 스스로 작성했다.

 

그것도 단 두 단어로.

인생에서 때론 적은게 더 나을 때도 있다.

 

NBA 에이전트 David Falk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20년 전 그날, 95년 3월 18일에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날 아침 Falk와 그의 오른팔인 Curtis Polk는 조던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전화를 받고 시카고에 있는 그의 집에서 미팅을 갖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조던이 그가 가장 신뢰하는 2명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미팅을 갖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불스의 훈련장인 Berto Center에서 2주간 트레이닝을 한 후, 조던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중대한 결정에 대해 Falk와 Polk의 의사를 듣길 원했다.

93년 은퇴 이후 1년 넘게 야구를 하며 떠나 있던 코트로의 복귀.

 

조던은 본인 스스로의 결정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항상 Bulls를 포함한 그의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조언을 구해왔다. 실제로 그 날의 미팅 전부터 조던은 그의 코치였던 필 잭슨과 복귀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심지어 몇 경기나 뛸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조던은 처음에는 포스트시즌에 복귀하는 것을 원했으나 필 잭슨은 정규시즌에 20경기를 뛰는 것을 제안했다.  조던은 다시 10경기에서 15경기 정도를 생각했다가 최종적으로는 17경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조던은 정규시즌 중에 복귀하는 쪽으로 결심했고 이를 위한 최종 단계를 위해 Falk와 Polk에게 전화를 했다. 이 당시 둘은 조던이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조던의 집에서 이뤄진 미팅에서 그들은 (시즌 중) 복귀의 긍정적인 부분(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건 많은 경기를 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점)과 부정적인 부분(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논의를 했다. 결국 조던은 입장을 고수했고 그들에게 복귀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건 정말 예상외였습니다."

 현재 조던의 샬럿 호네츠에서 vice chairman으로 있는 Polk가 말했다.

 

"만약 그때 MLB가 파업하지 않았으면 조던이 그 시점, 어쩌면 영원히 복귀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정말 당시의 상태를 즐기고 있었거든요. 비록 야구에서 농구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선수들과의 동료애와 과도한 팬들의 관심이 줄어든 부분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는 대단히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야구를 그만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던은 본인의 야구 실력을 과거 농구 실력의 수준만큼 끌어올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야구를 위해 농구와는 다른 쪽의 근육을 키워왔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야구를 위해 벌크업을 했었고(특히 상체쪽) 이는 농구코트에 빠르게 복귀하는데에는 약간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도 이러한 부분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지만 결국 기다리기보다는 빨리 복귀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조던은 그가 복귀해서 팀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느꼈습니다."

 

그날, 조던은 그의 복귀사실을 필 잭슨과 불스의 오너인 제리 레인스도프에게 전했고 Falk는 당시 NBA 커미셔녀였던 데이빗 스턴과 NBC Sports의 회장인 딕 에버설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Falk는 공식적으로 조던의 복귀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그의 고객이 어떻게 생각을 바꿨고 얼마나 농구를 그리워했는지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문장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던은 여러 초안들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바로 그 때 본인의 생각대로 가기로 결심했다. 심플하면서 핵심에 바로 접근하는 그의 스타일대로.

 

 

 

 

 

"I'm back."

 

 

 

 

 

"그는 별다른 설명이나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Falk는 최종 보도문구를 언론사에 팩스로 보냈다.

 

"저는 제가 꽤 괜찮은 문장가라고 생각했거든요. 많이 써보기도 했었고. 그런데 조던이 그러더라구요. '내가 할게' 그러더니 테이블 앞에 앉아 몇 분 정도 생각하다가 쓰더군요. 'I'm back' 그리고 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OK, 이거면 충분해.'

 

그건 마치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같았어요. "I'll be back" 때로는 격조있는 표현을 하기 위해 길게 쓸 필요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의 두 단어가 모든 걸 보여줍니다."

 

조던이 복귀한 그 해, 조던이 농구를 한 건 버밍행 배런즈(그가 속했던 마이너리그팀)의 동료들과 픽업게임을 한 정도였고 그의 목표는 오직 메이저리그에 가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 조던의 꿈을 이루어 주는 것을 목표를 삼기도 했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도 9월에 콜업 가능성이 높다고 조던에게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노조 파업으로 인해 만약 어떤 선수가 MLB 로스터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 선수는 MLB팀과 스프링 트레이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이너리그팀과의 스프링 트레이닝만 가능했고 조던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 조던은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뭔가 할 수 있는 걸 찾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불스의 취재기자로 조던에 관련한 세권의 책을 내기도 했던 Sam Smith가 말했다.

 

조던이 떠나있는 동안 인사차 Berto Center를 정기적으로 찾긴 했지만 팀과 연습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3월초 어느날 팀과 연습을 가진 후 다음 날도 연습장을 찾으며 변화가 생겼다. 아무도 그가 복귀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 아무도 조던에게 묻지 않았고, 조던도 그런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 연속해서 연습장을 찾았던 그 두번째 날은 어떤 일이 생길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조던이 이틀 연속으로 연습에 왔을때, '와우, 그가 다시 농구를 하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3년에서 95년까지 조던의 슈팅가드 자리를 채웠던 피트 마이어스의 이야기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될 필요는 없었어요. 조던이 즐기며 플레이를 하고 졌을때 열받아 하는 걸 보면 말이죠." 위대한 센터 룩 롱리의 말입니다. "연습을 보면 그가 다시 뛰려고 한다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었어요. 저는 그가 이미 결심을 내렸다고 생각했죠."

 

당시 불스는 하위시드로서 플레이오프에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복귀는 요란스럽긴 했지만 반가운 일이었죠." 롱리의 얘기다. "연습은 훨씬 더 격렬해졌고 더 길어졌습니다. 우리는 마이클이 팀의 스피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해야 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의 스피드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했죠."

 

"연습경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이 되네요. 마이클은 코트를 계속 뛰어다니길 원했고, 스카티와 매치업을 했습니다. 스카티는 시즌 중이라 폼이 올라온 상태였고 최전성기이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조던이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좋은 연습상대 였습니다."

 

연습경기 후 조던은 그의 공격리듬을 되찾기 위한 별도의 개인 연습을 실시했다. 그는 슈팅연습을 하고 팀원들과 1-1 매치를 하기도 했는데 특히 마이어스가 조던과 많은 상대를 했었다. 마이어스는 86-87시즌 불스 루키였는데 6-6의 사이즈와 민첩성, 수비 집중력을 갖추고 있어 연습 시 조던을 막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조던이 은퇴한 후인 93년 10월 7일 불스에 재합류했다.

 

당시 95년에 있던 일대일 대결에서 마이어스가 어땠을까?

"말도 마세요. 꼼짝도 못했죠."

마이어스는 12대 4 정도로 졌었다.

"조던은 12골 연속으로 넣을 수도 있어요."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알고 있었고, 코치들이 어떻게 그를 막으려고 하는지도 알고 있었어요. 그는 다 알고 있었죠."

"조던은 그냥 실전을 위한 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적절한 튜닝 말이죠. 그가 야구할때 멀리 공을 보내기 위해 몸을 만들었기 때문에 상체가 훨씬 튼튼해졌죠. 그러다 보니 타이밍이 조금 어긋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조던은 오랜기간 그의 개인 트레이너로 일했던 팀 글로버를 불렀다. 그도 당시에는 다른 모든 이들처럼 조던의 시도가 어떤 결과로 끝이 날지 모르는 상태였다.

 

"조던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 상태가 어느 수준인지 테스트하고자 했습니다". 

 


글로버는 3월초 조던과 함께 시카고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와 야구를 위한 워크아웃을 진행했었다. 매일 글로버는 아침 일찍 조던의 집에서 그를 만나 근력운동과 컨디셔닝을 진행했고 연습 후에는 회복과 스트레칭을 비롯한 다른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의 목표는 조던의 점프 능력과 슈팅을 위한 상체 움직임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야구를 할 당시 조던의 몸무게는 225~228파운드였지만 농구를 할때는 213~216파운드가 더 적절했다.

 

"조던은 우익수였죠. 그 위치에서 야구공을 던질땐 직선으로 날아가야 합니다. 이때 어깨의 근육은 가능한 아치를 그려야 하는 농구의 슈팅 모션과는 다른 형태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농구로 돌아오기 위해 그의 어깨 부위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체 같은 경우도 야구를 할때, 특히 외야수일때는 점프를 할 일은 별로 없고 러닝 모션이 많습니다. 하지만 농구에서는 근육들을 지속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마이클 같은 경우 자신의 본능에 따라 플레이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1년 반이나 최고수준의 경쟁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이러한 본능을 다시 일깨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글로버는 그 시즌의 조던의 경기를 보면 점프슛을 던질때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던의 정규시즌 필드골 성공률은 41.1%로 커리어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다.

 

"도약능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고 슛의 아치도 조금 달랐습니다. 조던은 이에 대한 준비를 할만한 오프시즌을 갖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다른 선수들 같으면 그 만큼 농구랑 떨어져 있었으면 복귀하는데 몇 달이 필요했겠지만 조던은 자신이 준비가 됐다고 마음 먹기에 2주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10일 뒤에 조던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55점을 기록한다.

 

"저는 가능한 농구랑 떨어져 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조던은 그의 복귀전이었던 페이서스와의 경기 후 기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스포츠를 하다보니 저의 마음은 농구와는 거리를 두게 되었죠. 하지만 당신이 뭔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해왔다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이러한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전 정말 농구가 그리웠어요."

 

조던의 존재는 그가 복귀를 발표하기 전부터 다른 선수들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단순히 연습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 번의 보안 검색을 거쳐야 했다. 주차장을 들어가기 위해 한 번, 연습장을 들어가는데 또 한 번. 심지어 조던은 그만의 경호팀이 있었다.

 

 

"단순한 농구 이상의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월 초 이전엔 조던을 알지 못했던 롱리의 얘기다. (팀 멤버 중 절반 정도가 마찬가지였다)

 

 "그를 락스타처럼 대하지 않게 되는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전 방에 조던의 포스터를 붙여놨었거든요. 그래도 그를 팀메이트로 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조던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마이클은 좀 까칠한 면도 있으니까요. 워낙 자신감이 넘치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는 그와 가까워지는 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죠."

 

연습장에 오고 떠나는 과정에서 보안 강화뿐 아니라 수많은 전세계 미디어들도 상대해야 했다. 기자들은 연습장 밖에서 몇시간이나 진을 치고 있었고 심지어는 NBC Nightly News 생방송이 그곳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샘 스미스 : "그것은 조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단순히 스포츠를 초월한 뉴스였죠. 베이스 루스나 무하마드 알리 같은 겁니다. 더 이상 농구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 클린턴 대통령 조차 조던의 복귀에 대해 얘기하는 거죠.  (클린턴은 한 기자 회견에서 뭔가를 설명하면서 '이것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마치 조던이 불스에 복귀하는 것 처럼 말이죠.' 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뒤집어진거죠. 그건 마치 스포츠 버전의 예수의 부활과도 같았습니다."

 

불스가 연습을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했기 때문에 (이는 NBA의 정책과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불스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고 리그도 조던의 존재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불스 선수들로부터 아무 얘기라도 듣기를 원했다. '조던은 어때요? 그가 뭐라고 했나요? 왜 조던이 여기에 있죠?' 등등.

 

"선수들이 연습장에서 빠져나가면 기자들이 그 차들을 쫓아갔습니다. 언론인 입장에선 제일 굴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냥 죽치고 앉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물론 여기에 한방에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대단히 큰 뉴스인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여전히 평소와 같이 경기를 준비하는 일상의 삶도 있었습니다."

 

 

조던의 경우 보통 기자들이 운집하기 전 일찍 도착하곤 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 어떤 때는 그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조던의 것으로 보이는 차가 들어오는 걸 볼 수는 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는 차가 한 다스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미디어를 위해 멈추는 경우가 절대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언론이 몇몇 선수들보다 먼저 조던의 발표를 눈치채기도 했다.

 

마이어스 : "전 그때 TV를 보고 있었어요"

 

글로버 : "조던이 내가 돌아왔다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전혀."

그는 조던이 갑작스런 부상을 당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종목이 뭐든지 간에 그러한 것들을 방지하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불스 팀내에서 부정적인 반응이나 시즌 말미에 합류함으로써 팀의 화합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없었을까? 마이어스는 그러한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보세요, 조던 정도의 아이콘이 복귀해서 너와 같이 뛰고 싶다고 할때,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그 당시 그렇게 잘 플레이하지 못했고 뭔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조던이 우리에게 그 뭔가를 주었습니다. 그 정도로 뛰어난 존재라면 팀에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모두가 한줄로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게 그때 상황이었어요." 

 

조던의 결정 이후, Falk와 Polk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나이키와 게토레이 같은 그의 스폰서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Polk : "당연히 그들은 흥분했죠. NBA는 마이너리그 야구팀보다 훨씬 눈에 띄는 거니까요."

 

또한 그들은 영화 스페이스 잼의 감독에게도 연락을 했다. 당시 영화는 대본이 완성되어 7월부터 제작을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Falk와 Polk는 3월 19일 페이서스를 상대로 하는 그의 복귀전을 위해 인디애나폴리스로 날아갈 전용기를 준비했고 그의 등번호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23번은 그가 복귀하기 전 결번이 되었지만 불스와 NBA의 룰에 따라 23번을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던은 야구를 할때 입었던 45번을 원했다.

 

나이키와 불스의 용품담당자는 조던의 에어조던 X 농구화를 준비했고 당시 9살이었던 션 리빙스턴은 이 사실에 흥분했다. 워리어스의 포인트가드는 당시 시카고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 정도 떨어진 Peoira에 살고 있었다.

 

"조던이 더 많은 에어조던들과 함께 돌아올거란 사실에 우리는 모두 들떠 있었죠. 그때 시카고는 Peoria에서 대단히 멀게 느껴졌지만 조던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 만으로도 완전히 흥분하곤 했습니다. 우린 집엔 케이블 TV가 없었어요. 조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복귀해서 잘할걸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가 복귀해서 여전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불스를 위해 챔피언십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조던이 복귀를 발표한 날, 당시 불스의 business operations 부문 executive VP였던 Steve Schanwald는 부리나케 울리는 전화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팀의 시즌티켓 대기자 명단은 다시 늘었나고 TV 시청률과 우리를 스폰서 하고 싶어하는 기업들의 관심도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불스는 그냥 괜찮은 NBA 팀 중의 하나가 아닌, 다시 한번 스포츠 세계의 중심이 된거죠. 대여섯명 정도 우리팀에서 일했다가 그만 둔 친구들에게는 미안해지네요. 그들은 조던의 시대는 끝났고 더 이상 불스의 챔피언십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불스가 조던과 따로 인디애나에 도착했을때, 마이어스는 공항 펜스밖에서 팬들이 진을 치고 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할머니까지도 불스를 한 번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농구 관점에서 봤을 때 작전은 간단했다. 조던을 선발출장시키고, 트라이앵글을 돌려서, 조던에게 공을 줘라.

 

"물론 저도 마이클이 선발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는 어차피 트라이앵글도 잘 알구요. 감독님이 굳이 얘기해 줄 필요도 없었어요. 저도 알고 있었으니까."

 

"원정팀 락커룸에 들어가니까 Phil이 다가오면서 저를 쳐다봤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나는 마이클을 선발출장시킬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그러실거에요?', 하니까 '여기서 꺼저버려' 하더군요. 둘다 빵터졌죠."

 

마이어스가 조던의 은퇴이후 93년 불스와 재계약했을때, 그는 스스로가 조던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부담감을 갖지 않았고 팀에서도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

 

"팀에서는 매일밤 제가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을 수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던이 복귀했을때 마이어스의 마인드 셋은 '제가 여기 있으니 필요한 건 뭐든지 시켜주세요' 였다. 마이어스는 여전히 86년 조던이 그의 집을 깜짝 방문해서 3벌의 유로피언 수트를 선물로 줬던 걸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불스가 마켓스퀘어 아레나에 들어섰을 때 마이어스는 마치 파이널 경기 같았다고 기억한다. 롱리도 당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모든 좌석이 꽉 차 있었어요. 심판들조차도 경기에 더 집중하는 것 처럼 보였고 모든 플레이에 더 큰 함성 소리가 나왔습니다. 조던이 게임에 있는 모두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은 겁니다."

 

"맥주랑 프레첼도 더 많이 팔렸을 거에요. 조던의 저지를 다시 판매하기 시작했고 롱리의 저지는 안 팔리게 됐죠 (웃음)"

 

당시 13살의 드웨인 웨이드와 14살의 자말 크로포드도 멀리서 그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둘다 집에 있었다. 웨이드는 시카고에서 그의 배다른 형제와 함께, 크로포드는 LA에서 친구와 함께.

 

"형은 그때 부엌에 앉아 그의 12인치 TV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조던이 그의 페라리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웨이드는 현재 조던의 좋은 친구이고 조던브랜드의 광고모델을 하기도 했다)

 

 

"그냥 끝내주는 모습이었죠. 벌써 20년 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그때 전 지금 우리 아들 나이였으니까요."

 

"그가 돌아왔을때 그를 더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죠. 제가 어렸을때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자신감을 갖는 게 대단한 일이었어요. 걸어다니면서도 뭔가 으쓱하는 기분을 갖게 했죠. 당신은 제가 어린시절 마이클 조던과 스카티 피펜, 시카고 불스가 저에게 미친 영향을 상상할 수 없을 거에요. 그들은 제가 언젠간 나도 저렇게 될거라는 꿈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였으니까요."

 

2000년대 초 불스에 있을때 크로포드는 조던의 집에서 몇차례 워크아웃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진짜 끝내 줬어요. '내가 돌아왔다' 그거면 충분했죠. 그가 세계 최고였으니까요. 저는 그의 상징적인 동작 중 하나인 한손 핑거롤 레이업을 하는 장면을 기억합니다(LA와의 파이널에서 나온 그 유명한 동작일 것 같습니다). 마치 공중에 멈춰 있는 것 같았죠." "당장 어제만 해도 'Michael Jordan's Playground'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재밌네요. 저는 그의 모든 동작들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페이서스를 상대한 복귀전에서 조던은 28개의 슈팅 중 7개를 넣으며 19점을 기록했고 6 어시스트, 6 리바운드, 3개의 스틸을 추가했다. 경기후 가진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스미스는 조던이 그가 창출한 이 모든 상황에 취해있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조던은 단지 팀을 패배에서 구해내지 못한 것에 실망할 뿐이었다.

 

당시 그 방에는 조던이 그의 야구로의 여정을 시작했을 때 처럼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었다.

 

Falk : "그가 은퇴를 발표하던 날, 누군가가 미디어로부터의 압박 때문인 건지 물어 봤었고 저는 그때 조던이 얘기한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이 발을 들어 나를 문 밖으로 차버리도록 두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그가 떠날 때도, 돌아왔을 때도 아무런 압박이 없었습니다. 단지 조던은 그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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