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 내고 자동차 밑에 숨은 여사님

저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안다. 

새벽에 자유로에서 졸음운전 하다가 차 측면으로 돌로 된 중앙분리대 긁었는데

중앙분리대 모양이 상단이 좁고 하단이 툭 튀어나온 모양이라 그랬는지 휠이 아작나고 안쪽에 뭐가 깨져서 엑셀 밟아도 차가 안움직이는 상태였음. 

다른사람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다른사람 재산에 피해 준 것도 없고, 그냥 밤에 졸다가 꼴아박아서 자기차 자기가 부숴먹고 보험처리 하면 땡인 상황이었는데도

그때 심정을 말로 표현하자면...그냥 한마디로 '싫었다'

이미 보험사 전화하고 렉카차 불러놓은 후에 밖에 나와 담배 한대 빨고 있던 타이밍이라 더 이상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상황은 종료된 거나 마찬가지인 시점인데

이런 상황이 나한테 닥쳤다는 사실 자체가 그냥 존나 싫고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 가능하기만 하다면 5분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아 내가 차를 몰고 나올게 아니라 근처 모텔이라도 잡아서 자다가 나왔어야 했는데 괜한짓을 했다 이런 '생각'이 들고 후회가 되는게 아님. 

그냥 무조건 '아 존나 싫다'라는 감정밖에 없더라. 

남을 다치게 한 것도 재산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도 이 지경이었는데, 다른 차를 꼴아박거나 누굴 죽게한 상황이라면 어느정도 기분이었을까....

나중에 잡혀서 가중처벌 받을게 뻔한 뺑소니를 도대체 왜 하는지 이해를 못했었는데 겪어보니 알겠더라....

뺑소니는 논리적으로 내가 도망갈 수 있을거란 계산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님. 

극단적 상황에 처해서 패닉상태로 비이성적인 현실도피를 하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