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393호
강화도 전등사 철종
일제시대 일제가 무기를 만들기 위해 공출로 전등사의 범종을 빼앗아가자
전등사 주지스님이 해방직후 범종을 되찾기 위해 일제 병기창을 뒤지고 다니던 도중
부평 병기창에서 발견
원래 전등사의 종은 아니었지만 일제가 챙겨갈까봐 가져왔는데
후일 명문을 해석한 결과
1097년 송나라에서 주조된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었던 것으로 밝혀짐
아래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모습
보물 635호
경주 계림로 보검
4~5세기경 동로마시대
켈트족출신의 트라키아(현재의 불가리아) 왕이 주문 생산한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으로
경주 미추왕릉 인근 계림로 12호 고분에서 발견됨
로마양식도 섞여있으며 로마문화에 정통한 장인이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역 및 유목민들과 신라의 교류에 대한 증거이기도 함
보물 668-4호
권응수 장군 유물 장검
일본의 명공 비젠 오사후네 스케사다(備前長船祐定)가
1521년 만들어낸 우치카타나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권응수가 키하치로 알려진 왜장을 참살하고 노획하여 사용했었음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기원전 8세기 코린토스 초기양식으로 만들어진 투구이며
1875년 제우스 신전유적에서 발굴되었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전에는 마라톤 우승자들에게
고대 그리스의 보물을 증정하는게 관례였으나
베를린 올림픽무렵부터 문화제 해외 반출에 대한 인식이 엄격해지면서
그런 관습이 사라졌기에
손기정옹이 그리스보물을 받은 마지막 인물이 되었음
손기정 옹이 받아서 보관하다 국가에 기증함
중앙아시아의 유물 360여건 1500여점
오타니 컬렉션으로 불리우는 물건들로
일본이 중앙아시아에서 약탈하여 가져가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일단 한국땅에 보관하던 중 해방되어 얼떨결에 우리 손에 들어온 물건들임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약탈한 것도 아닌 선의취득이고
어디서 이것 저것 약탈한건지도 불분명해서 돌려줄 국가도 애매함
두보의 유묵 "등루"
현존하는 유일한 시성 두보의 유묵
중국미술의 반달리스트 건륭제의 인장도 11개나 찍혀있음
원래 중국에 남아있던 유묵들은 문화대혁명 당시 죄다 불타 사라진걸로 추정
갑신년 춘모(744년)에 지어졌다고 적혀있으며
이때는 두보가 이백을 만나는 시기라 많은 시를 짓고 있을 때였음
시의 내용을 한줄 요약하면
"ㅅㅂ 나 왜 취업 안됨"
상나라 시대의 토기
상나라 시대 물건인 것도 그렇지만 더 대단한건 새겨진 갑골문의 내용
불길하게도 대낮에 금성(태백성)이 나타났습니다.
신(辛)의 군대를 출병시킬까요? 주후서백(周侯西伯)의 군대와 그의 우군들이
주(州) 서읍으로부터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없을까요?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께서 돕고 지켜주실까요? 엄정한 기강이 무너지고 방임되는 일이 있을까요?
과연 서백후(西伯侯)로부터 그러한 일이 있었다.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이시여! 문(文)을 치기 위해 저녁에 제를 올리면,
우리 군대가 승리를 획득할 수 있을까요?
정수(井宿)에 제를 올리면 짐이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요?
왕이 성조를 살펴 길흉판단을 해 가로되, '각성(角星)이 밝게 빛나니,
나는 문(文)의 세력을 정벌해 배(나라)를 평안하고 고요하게 이끌 것이고,
승리를 획득한 후에는 서읍을 분봉할 것이며, 재앙은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3000년전 상(은)나라 주왕이 반란을 일으킨 주후 서백(주나라 문왕)을 진압하러 나서기 전
전쟁의 결과를 점친 내용이 적혀있었음
주지육림의 그 주왕 맞음
중국 시골에서 그냥 골동품으로 사와서 애들 장난감 담아두는 용도로 쓰다가
우연히 적힌 내용이 갑골문이라는걸 알게되어
국내에서 1차적으로 감정을 받은 결과 적힌게 저런 내용이라는걸 알게됨
이후 영국 옥스포드 감정공사에서 다시 감정을 받아 진품으로 확정받음
최소가치 1500억이라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