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고, 그에 맞춰 정책들도 십수년간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작년에 출산율 0.92를 찍으면서 최저를 또 달성함.
신생아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더 많은 돈을 주고, 세금도 깎아주며, 집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 이런거 사실 다 소용 없다는게 이미 여러 정책들로 드러난지 오래이고, 이제 이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할 시점이 왔다고 봄.
과연 아이를 낳지 않는게 단순히 돈과 집의 문제 뿐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돈의 문제도 맞긴 하지만 그것 이외의 다른 문제들도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함.
돈이 적을수록 아이를 낳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과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봄.
적어도,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통계적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돈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을테니.
그런데, 여기에 '왜 돈 때문에 못낳는지?'에 대한 생각은 미처 반영되지 못했다고 생각함.
지금보다 훨씬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던 1970년대에는 출산율이 3.0이 넘었고, 인구 증가로 인한 문제등을 조절하기 위해 산아제한정책을 펴던게 7-80년대임. 그리고 80년대 들어서야 겨우 3.0 이하로 떨어질 정도로 아이를 많이 낳았음. 먹을게 없던 시절에도 아이는 꾸준히 낳았으니 돈이 출산율을 결정짓는 주된 원인이 애초에 아니었단 얘기임.
심지어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소득이 높을수록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지, 소득이 낮을수록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진 않음.
그렇다면 돈이 문제가 아니면서 사람들은 왜 돈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답을 했을까?
이유는 '대부분의 다른 이유들은 설명하기에 불명확하지만, 돈은 명확하기 때문' 이라고 생각함.
다른 이유들은 어떤게 있을지 고민을 해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함.
첫번째, 부모님들의 노후에 대한 부담이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자녀들을 위해 부모님들이 돈을 결혼까지 지원하거나 그 이후까지 지원하는게 보편적이며 그로 인해 노후를 위한 재무 설계라는 개념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했음. 하지만 예전에는 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음. 이유는 다음과 같음.
7-80년대를 살던 가임기 나이대 사람들(5-60년대생) 대부분의 고향 = 시골 (부모님 대부분이 농사를 지음)
80년대생 이후 출생자들 대부분의 고향 = 도시 (부모님 대부분이 농사가 아닌 2,3차 산업에 근무)
부모님이 현재 머무는곳이 시골이냐 도시냐의 차이는 부모님이 60세 이후에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이고 이게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침.
시골의 경우 7-80세까지 논밭에서 일하시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자녀들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음.
게다가 시골에 부모님이 있는 5-60년대생들의 경우 형제가 많았기에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해도 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 해질수 있었음.
하지만, 도시에 사시는 7-80세의 노인분들은 경제적 활동이 제한적이며 생존을 위해서는 자녀들의 금전적 지원이 필수적임.
심지어 도시에 부모님이 계신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의 경우 형제가 1-3명 사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5-60년대생들에 비해 개개인이 떠안는 부모님의 노후에 대한 부담이 한층 더 심해졌음.
두번째, 아이들에게 나은 미래를 물려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7-80년대는 누가봐도 삶의 질이 나아지고 있던 시기였고, 개발 된 것들보다 앞으로 개발 할 것들이 많아보였던 시대였음.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나도, 자신들보다 나은 삶을 물려줄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음.
극소수의 상위계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교육이라고 해봐야 공부 좀 잘하는 동네 누나, 형한테 과외 받는게 대부분이었고
학원이라고 해봐야 전과목을 다 가르치는 보습학원 정도가 전부였기에 교육 격차도 크게 없었음.
누구나 머리가 좀 좋고, 노력만 한다면 흔히 말하는 '사'짜 들어가는 직업(판사, 의사, 검사)를 꿈꿀 수 있었고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었음. 그리고 실제로 그 계층 사다리를 오른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있기도 했었을정도니.
하지만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90년대의 학창시절을 거치는 와중에 대학 진학도 전에 IMF를 겪으며 가족, 친지들이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서 자랐음. 대학 진학 이후에는 전례없는 취업난을 겪었으며, 취업 이후에도 IMF이후에 보아왔던 정리해고등을 보면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느낌. 게다가 사회는 경직되기 시작해서 계층사다리는 조금씩 치워졌고, 이젠 개천에서 용나는 사례를 찾아보는게 예전만큼 쉽지 않아졌음.
이 상황에서 집을 해결해주고, 돈을 조금 쥐어준다 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생활이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음.
이젠 아이들을 낳는다고 해도 아이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음.
세번째, 내 노후는?
5-60년대생들은 노후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었음. 5-60년대생들의 부모님 세대는 대부분 노년까지 소일거리를 하며 자기 먹을것은 자기가 버는게 당연한 시대였고, 당연하게도 5-60년대생들 또한 같은 개념을 물려받았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노년층 일자리 문제가 여기서 나옴.)
5-60년대생들의 자녀들인 현재 가임기 세대인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부모님들의 현재 상황을 목격하고 있고, 따라서 자신들의 노후는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음.
결국 80년대 이후 출생한 현 가임기 세대들은 이전 세대(5-60년대생)들에게 없던 부담 몇가지가 더 얹어진 셈임.
1. 말도 안되게 오른 집값
2.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현재
3. 부모님의 노후, 나와 내 배우자의 노후를 챙겨야 하는 상황
여기에다가 4. '자녀를 낳고 길러 결혼까지 시킴' 이라는 전통적인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더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것이라고 생각함.
이걸 아주 지극히 단순화 시키면 '돈문제'가 되겠지만, 실제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큼.
사람들은 구조적 문제를 인지 못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므로 결국 다들 대답은 '돈' 이 되는거고, 정책도 그에 맞춰 돈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고 봄.
하지만 돈과 집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는게, 돈과 집은 어디까지나 1-3번의 부담을 '약간 덜어주는 정도'에 그칠 뿐, 해결해 줄 수는 없으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부담은 여전히 느낄 수 밖에 없음.
그 증거로,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만큼 출산율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건 위에 3,4번 문제가 상대적으로 훨씬 덜하기 때문임.
저출산 국가들이 몰려있는 유럽의 경우 부모님의 노후를 자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자녀들의 결혼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도 약함. 따라서 아이를 낳는데에 대한 부담이 덜 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함.
결론을 정리하면
돈을 아무리 줘도, 애를 낳고 기르기가 부담되는 구조임.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
모든 국민들의 노후가 보장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떄문에,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노년층이 되어 스스로 노후를 부담하고
1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가임기가 되고 부모의 노후에 대한 부담이 없어질때 쯤에나 출산율이 오를 것 같음.
애초에 본인노후도 일자리 일자리 한곳에서 평생못하니까 노후준비가된다고 장담못함.